‘현금 없는 사회’ 가능할까?

2019년 1월 23일 업데이트됨



현금보다 장점 많은 전자결제와 보안기술 고찰



YOONam Group 이사회 의장 윤태식

(한국방위사업연구원 기술전문위원)

(국방사이버안보연구센터 기술위원)


2016년 작성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숨 가쁘게 진행될 때 금융계의 다른 쪽에서는 그에 못지않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비트코인(Bitcoin)이라는 전대미문의 발명품이 등장한 것이다. 소위 ‘디지털 통화(digital currency)'라는 전자결제다.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현금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한 결제 수단은 그 이전에도 많았다. 미국 유통업체 아마존이 발행하는 아마존 코인(Amazon Coin)이나 우리나라의 민간 사업자들이 발행하는 전자화폐(E-money)가 그 예에 속한다. 그러나 이 전자 결제 수단들에는 별도 화폐 단위가 없었으며, 이를 발행하는 기업이 현금과 일대일로 교환을 보장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점에서 현금이 아니라 현금의 보완 수단이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현금의 지위에 도전했다. 우선 ‘비트코인(BTC)’이라는 독자적 계산 단위를 갖고 있으며 1비트코인과 기존 화폐들의 교환 비율은 전문 거래소에서 매매를 통해 결정된다.(현재 1비트코인의 가치는 미화 520달러 정도)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은 외화(外貨)와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국내 거래에서도 환전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운반의 불편과 위험도 없다. 현금보다 장점이 많은 것이다.


한편, 얼마 전에는 비트코인이 마약 거래에 사용되거나 컴퓨터 해커들이 다른 사람 소유의 비트코인을 절취하는 일까지 생겼다. 디지털 통화는 이렇듯 쓰임새 면에서도 진짜 현금의 영역에 아주 가깝게 다가갔다. 그런 와중에 리플(Ripple)과 라이트 코인(Rite coin) 등 유사한 디지털 통화들이 속속 출현하고, 사람들은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미래의 결제 수단에 관해 대립하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현금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본다. 오스트리아 학파처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반면,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화폐를 시장 참가자들의 발명품으로 본다. 즉 시장 참가자들이 거래 편의를 높이기 위해서 현금을 고안해 냈고, 그것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결제 수단이 등장한다면 현재의 현금을 대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반면 전자 결제 수단이 현금을 대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독일 제도학파처럼 문명사회는 법률이 만든 질서를 통해 작동하며, 화폐제도도 법질서의 하나라고 보는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화폐를 시장 참가자들이 아닌 국가 주권의 산물로 본다. 예를 들어 그리스에서는 화폐를 ‘노미스마(nomisma)'라고 불렀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따르면 이 말의 원래 뜻은 법률 또는 명령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런 견해를 바탕으로 금본위 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20세기 이후 전 세계가 금과 교환되지 않지만 국가가 보증하는 ‘불태환 화폐’를 쓰고 있는데, 이는 케인스의 주장이 현실화된 것이다.


제도학파나 케인스의 눈으로 보자면, 시장 참가자들이 만든 비트코인은 법질서에 뿌리를 둔 화폐(법정화폐)를 결코 대체할 수 없다. 과거의 어음이나 수표, 오늘날의 신용카드처럼 비트코인도 기껏해야 현금을 보조하는 보완재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금 없는 사회’는 일종의 착각이거나 업자들의 선전 문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각국은 지금보다 현금이 덜 쓰이기 바라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들이 케인스의 견해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전자 결제 수단이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현금과 경쟁하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자 결제 수단들이 잘 보급되어서 화폐 제조비용과 수고가 절감되기를 바라고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과 영국 런던 등에서 이미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을 현금으로 받지 않고 있다. 덴마크는 소매점에서 현금 결제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 중이다. 이런 사례가 확산되면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유럽에서는 지폐 사용까지도 제한하고 있다. 유럽중안은행(ECB)이 2018년부터 500유로화 발행을 전명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그리스, 포르투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은 1000유로 이상의 거액 거래에서 현금 사용을 이미 금지했다. 범죄와 테러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고액권과 동전이 여러 가지 이유로 천덕꾸러기로 변해가고 있지만, 당장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가 도래할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설명한 제도학파 철학적 이유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중앙은행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 사회는 디지털 통화가 동전과 고액권은 대체하지만 여타 지폐들과는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공존 환경을 가꾸는 문제가 숙제로 남는다. 나라마다 접근 방식은 다르다. 독일에서는 디지털 통화를 이용한 거래를 여타 거래와 똑같이 취급한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자금 세탁 방지 차원에서 디지털 통화의 거래를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투기 거래를 우려해서 금융기관이 디지털 통화를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며, 러시아도 디지털 통화사용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핀테크 산업 지원에 나섰지만, 디지털 통화에 대해서는 할 일이 많다. 우선 디지털 통화는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래서 금융기관들이 이를 영업에 활용할 수 있는지가 모호하다.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지급 결제의 신세계가 열렸다. 블루오션을 기대하는 우리나라와 각국의 정책 당국은 머리를 모아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전제 결제의 보안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그래서 <윤의 법칙 인공지능 보안기술>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 근접한 스웨덴(뉴욕타임스 기사)


“신도들이 십일조 헌금을 교회에 문자메시지로 보냅니다. 노숙자 자활을 돕는 잡지를 거리에서 파는 노숙자들도 휴대용 카드 단말기를 가지고 다닙니다. 70년대 ‘머니, 머니, 머니(Money, Money, Money)'란 곡을 만들었던 팝 그룹 아바를 기리는 아바 박물관에서도 지폐와 동전은 받지 않습니다.”


2015년 말 뉴욕타임스가 게재한 ‘스웨덴에서 현금 없는 미래가 가까워졌다’는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현금 없는 사회’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폐와 동전이 스웨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2%로 미국의 7.7%나 유로존의 10%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낮다.


스웨덴 정부에서 오래전부터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사용을 권장했고, 최근에는 ‘스위시(swish)'라는 모바일 앱을 통해서 스마트폰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도 직불카드를 하나씩은 갖고 다닌다고 한다. 스웨덴에는 아예 문 앞에 ’현금은 받지 않는다‘고 써 붙인 상점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거리에서 현금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특히 은행에 침입한 강도가 아무 것도 훔치지 못하고 잡히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금 없는 사회로 너무 빨리 이행하다 보니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노약자나 외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필요할 때 현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있다고 한다. 또 지폐나 동전 같은 실물을 주고받지 않다 보니 소비가 헤퍼지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한다. 스웨덴중앙은행은 앞으로 적어도 20년간은 지폐와 현금이 계속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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